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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회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 이 한 줄만으로도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가 범상치 않다는 건 직감했습니다. 《부산행》, 《반도》에 이은 세 번째 좀비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했는데, 리뷰 영상을 보는 내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좀비물과는 차원이 달랐거든요.

집단 지성 — 뇌 없는 생명체가 최단 경로를 찾는다면?
《군체》가 설정의 기반으로 삼은 생물이 있습니다. 바로 황색망사점균(Physarum polycephalum)입니다. 여기서 황색망사점균이란 뇌도, 신경계도, 중앙 지휘 개체도 없이 오직 영양분의 흐름만으로 스스로 경로를 최적화하는 단세포 생물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는데 집단 전체가 가장 효율적인 길을 알아서 찾아낸다는 이야기죠.
실제로 나카가키 도시유키 연구팀은 2000년 미로 실험을 통해 이 현상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습니다. 미로의 양 끝에 먹이를 놓고 점균을 풀어두자, 점균은 스스로 불필요한 경로를 제거하고 오직 최단 경로만 남겼습니다(출처: Science). 제가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비보다 점균이 더 무서웠습니다.
영화 속 좀비들은 바로 이 원리를 따릅니다. 흰색 균사체 네트워크, 즉 감염자들이 몸 밖으로 뿜어내는 실처럼 얽힌 생체 통신망을 통해 개체 간 시각·청각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합니다. 한 개체가 들은 것을 전체가 듣고, 한 개체가 본 것을 전체가 봅니다. 이것이 영화가 말하는 '업데이트'의 정체입니다. 리더 없이 작동하는 이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개념이 좀비물에 이렇게 정밀하게 적용된 경우는 제 경험상 처음이었습니다.
- 황색망사점균: 뇌·신경 없이 영양 흐름만으로 경로를 최적화하는 단세포 생물
-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개별 개체의 능력과 무관하게 집단 전체가 고도의 판단을 수행하는 현상
- 균사체 네트워크: 감염체들이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생체 통신 구조 — 영화의 핵심 공포 설정
진화형 좀비 — 패치가 거듭될수록 더 무서워진다
처음에 좀비들을 속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불을 끄면 멈추고, 사람 사진을 미끼로 던지면 달려들었죠. 저도 리뷰를 보며 '이 정도면 어떻게든 탈출할 수 있겠는데'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산이었습니다.
균사체 업데이트가 한 번 일어날 때마다 좀비들의 행동 양식이 통째로 바뀝니다. 사족보행(네 발 이동)에서 이족보행(두 발 이동)으로 전환되고, 이어서 인간과 사진을 구분해 내기 시작합니다. 사족보행이란 네 발로 몸을 지지해 이동하는 방식을 뜻하고, 이족보행이란 두 발로 직립해 걷거나 달리는 방식을 말합니다. 즉 초반의 원초적인 상태에서 점점 인간의 운동 능력을 모방해 가는 것이죠. 이 장면들에서 제가 느낀 서스펜스는, 단순히 '저 좀비가 빠르다'는 공포가 아니라 '다음 패치엔 뭘 배울까'라는 예측 불가능성의 공포였습니다.
연상호 감독이 설정한 진짜 무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몇 마리를 쓰러뜨려도 그 정보가 이미 군체 전체에 공유됐기 때문에, 개별 개체를 제거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적은 생명체가 아니라 하나의 운영체제(OS)인 셈이죠. 운영체제란 여러 구성 요소를 통합 관리하며 전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결정하는 상위 구조를 의미하는데, 이 비유가 군체의 공포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이오 테러리스트 서영철이 설계한 것은 좀비 한 무리가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생체 지능 시스템이었던 겁니다(출처: Nature — 점균류 학습 능력 관련 연구).
연상호 감독 — 수직 공간과 인간 군상으로 완성한 밀폐 공포
《부산행》은 기차라는 수평 밀폐 공간을, 《반도》는 한반도 전역이라는 광역 공간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군체》는 어떤 공간을 선택했을까요? 답은 초고층 빌딩, 즉 완전한 수직 밀폐 공간입니다. 올라가야 탈출구가 있는가 싶으면 다시 내려가야 하고, 내려가다 보면 또 막히는 구조입니다. 제가 리뷰를 보면서 숨이 턱 막혔던 이유가 바로 이 수직성 때문이었습니다. 평면적 도주가 불가능한 환경에서 공포의 밀도는 배로 높아집니다.
그 공간 안에 담긴 인간 군상도 눈여겨볼 포인트입니다. 다리가 불편한 현이는 가장 불리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휠체어를 미끼로 내놓으며 타인의 탈출을 돕습니다. 생명공학과 교수 권세정은 아무도 돕지 않던 순간 망설임 없이 현이를 일으킵니다. 살아남는 데 최적화된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살아남는 방식, 그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인간적 온도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영철이 자기 몸에 직접 백신을 주입한 채 빌딩 안 어딘가에 있고, 생존자들이 그를 찾아 특정 층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서사 구조는 다소 퀘스트식 전개처럼 읽혔습니다.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 고수라는 사실상 전원 주연급 캐스팅인 만큼, 좁은 공간 안에서 일부 캐릭터의 서사가 충분히 소화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남습니다. 그럼에도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좀비 그 자체의 공포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는 점, 그리고 실제로 그 집중이 설정의 완성도로 이어졌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군체 좀비가 기존 좀비랑 뭐가 다른 건가요?
A. 기존 좀비가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개별 개체였다면, 《군체》의 좀비는 균사체 네트워크를 통해 집단 전체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행동을 갱신합니다. 한 개체가 새로운 것을 학습하면 전체가 동시에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몇 마리를 처치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게 핵심 차이입니다. 리더 없이 스스로 진화한다는 점이 이전 좀비물에서 보기 어려웠던 설정입니다.
Q. 황색망사점균이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인가요?
A. 네,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입니다. 2000년 나카가키 도시유키 연구팀이 미로 실험을 통해 황색망사점균이 뇌 없이도 최단 경로를 스스로 찾아낸다는 사실을 Science에 발표했습니다. 《군체》는 이 논문을 실제 과학적 근거로 삼아 좀비의 집단 지성 설정을 구축한 것으로, 영화가 임의로 만들어낸 가상 생물이 아닙니다.
Q. 앤트밀(Ant Mill)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나요?
A. 앤트밀이란 선두 개미가 자신의 페로몬 흔적과 다시 만나 무한 루프에 빠지고, 탈출 신호를 줄 개체가 없어 개미 군체 전체가 지쳐 죽을 때까지 원을 도는 현상을 말합니다. 영화는 이를 현대 AI와 알고리즘으로 촘촘히 연결된 사회의 맹점에 빗댑니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연결되지만, 정작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메시지입니다.
Q. 연상호 감독의 《군체》, 《부산행》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A. 《부산행》이 기차라는 수평 밀폐 공간 안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연대를 담았다면, 《군체》는 초고층 빌딩이라는 수직 밀폐 공간에서 좀비 자체의 공포에 더 집중합니다. 연상호 감독도 이번 작품에서는 처음부터 좀비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인간 드라마 중심이었던 《부산행》과 달리, 《군체》는 진화형 좀비의 설정 자체가 서사를 이끄는 구조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군체》는 황색망사점균이라는 실제 과학 이론을 좀비 장르에 접목해 '집단 지성으로 진화하는 좀비'라는 완전히 새로운 공포를 완성한 작품입니다. 서사 일부의 작위성이나 과밀한 캐스팅의 한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수직 밀폐 공간과 실시간 업데이트 좀비가 결합한 서스펜스는 제 경험상 국내 좀비물 중 가장 정교한 설계에 해당합니다.
무엇보다 앤트밀 비유로 마무리되는 사회적 메시지, 즉 방향을 잃은 채 연결만 강화되고 있는 현대 네트워크 사회에 대한 날 선 시선이 인상에 깊이 남았습니다. 제79회 칸 영화제 초청이라는 타이틀이 허투루 붙지 않았다는 게 리뷰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극장 스크린으로 직접 확인해 보실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