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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척하던 시절이 그리운 게 아니라, 그때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리운 거라는 걸 영화 한 편이 일깨워줬습니다. 2009년 개봉한 이성한 감독의 《바람》은 배우 정우의 실제 부산 고등학교 시절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성장 영화입니다.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건, 이 영화는 일진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 이야기였습니다.

학창시절 _ 폼 잡던 짱구, 그때 우리 모두의 얼굴
학교 다닐 때 센 척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정말 있을까요. 저도 솔직히 없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짱구는 고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불법 서클 몬스터(Monster)의 위세에 눈이 뒤집힙니다. 여기서 불법 서클이란, 학교 측의 공식 인가 없이 선후배 위계질서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비공식 패거리 조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학교 안의 또 다른 권력 구조였습니다. 몬스터는 26년 전통을 내세웠고, 짱구가 속한 레이저는 11년 전통이었으니, 1990년대 후반 부산 고교 문화가 얼마나 이 서클 중심으로 돌아갔는지 짐작이 됩니다.
짱구는 결국 선배 영주의 추천으로 몬스터에 가입합니다. 가입 인사를 드리던 장면에서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저는 김정국입니다"라고 꼿꼿하게 서 있던 그 모습이, 제가 중학교 때 선배들 앞에서 괜히 목소리 낮추고 서 있던 기억과 겹쳐서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전통 계승 의식인 금반지 증정 행사가 선배들 불참으로 취소되는 장면은 그 시절 '허세 문화'의 민낯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자전적 성장 서사(bildungsroman)란 주인공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내면의 변화 중심으로 그리는 서사 장르를 말하는데, 이 영화는 그 전형적인 형식을 따르면서도 과장 없이 날 것 그대로를 담아냈습니다.
- 몬스터: 26년 전통의 최상위 불법 서클, 학년별 최강자들로 구성
- 레이저: 11년 전통의 서클, 짱구가 처음 눈독 들이던 조직
- 짱구의 실명은 김정국으로, 배우 정우의 실제 학창 시절 이름
- 부산 사투리와 서면 시장 골목 로케이션으로 시대적 공기를 재현
학창시절
성장영화가 건드리는 것, 결국 아버지였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가슴을 찌르고 들어온 건 짱구가 센 척하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바깥에서 그렇게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던 짱구가, 간경화(liver cirrhosis)로 누워 계신 아버지의 부어오른 다리를 주무르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여기서 간경화란 간세포가 만성적으로 손상되어 딱딱하게 굳어가는 질환으로, 말기에는 복수와 부종이 심하게 나타납니다. 영화는 그 의학적 설명을 한 마디도 하지 않지만, 아버지의 퉁퉁 부은 발목 하나로 모든 것을 전달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퇴근길에 통닭 한 마리와 바나나우유를 사들고 와서 "우리 짱구 박사"라고 불러주던 회상 장면은,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런 게 진짜 아프구나 싶었습니다. 크고 든든했던 그 아버지가 한 줌으로 작아졌을 때의 충격은 말로 설명이 안 됩니다. 짱구가 아버지 임종 후 상복을 입고 주저앉아 오열하는 장면에서 결국 흐느꼈습니다.
영화학에서 말하는 카타르시스(catharsis)란 관객이 극 중 인물의 감정에 완전히 이입되어 억눌린 감정을 정화하는 경험을 뜻합니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그 교과서적인 정의를 그대로 체험하게 해 줬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바람》은 2009년 개봉 당시 순제작비 대비 이례적인 흥행 성과를 거두며 저예산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전반부의 유쾌한 폼생폼사 활극이 후반부의 묵직한 가족 서사로 전환되는 그 흐름이,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영화입니다. 단순히 학교 폭력이나 서클 문화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철없던 자식이 아버지를 잃고서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영화를 마냥 낭만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이게 좋은 영화인 건 분명한데, 마냥 박수를 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바람》은 미장센(mise-en-scène) 측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배경, 소품 등을 종합적으로 설계하는 영화 연출의 핵심 개념입니다. 서면 시장 골목, 학교 복도, 허름한 교실 풍경까지 1990년대 후반 부산의 공기를 경이로울 정도로 생생하게 복원해 냈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부에서는 이 영화가 학교 폭력과 패거리 문화를 당시의 향수와 낭만이라는 필터로 미화했다는 윤리적 지적을 받습니다. 대도 형님이 길거리에서 그냥 보이면 때리고, 선도부를 공개적으로 압도하는 장면들이 영화 특유의 유머 코드로 소비될 때, 그 폭력의 피해자 시각은 화면 안에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지적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또한 에피소드 나열식 서사 구조(episodic narrative structure), 즉 단일한 플롯의 기승전결 없이 자잘한 일화들을 연속으로 펼치는 방식은 극적 긴장감을 기대한 관객에게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손호준, 지승현, 이유준 등 개성 넘치는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는 그 산만함을 충분히 상쇄했고, 국악풍 OST가 귓가에 맴도는 여운은 오래갑니다. 영화 전문 비평 플랫폼 씨네 21에서도 이 작품을 "한국 청춘 성장영화의 독보적 클래식"으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출처: 씨네 21).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바람은 실화인가요?
A. 네, 배우 정우의 실제 부산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주인공 짱구의 실명인 김정국이 정우의 본명이며, 몬스터·레이저 같은 서클도 실제 존재했던 조직을 토대로 했습니다. 다만 영화적 재구성이 더해졌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는 아닙니다.
Q. 영화 바람 배경이 어디인가요?
A. 1990년대 후반 부산이 배경입니다. 서면 시장 골목, 버스 안, 학교 복도 등 부산 특유의 공간이 생생하게 등장하고, 극 중 인물들이 모두 부산 사투리를 씁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이 로케이션 밀도가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라고 느꼈습니다.
Q. 영화 바람이 학교폭력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A. 이 지적은 꽤 타당하다고 봅니다. 서클의 위계질서와 패거리 문화가 향수 코드로 소비되면서 폭력 피해자의 시선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 영화가 폭력을 '정답'으로 제시하기보다 그 시절의 풍경을 날 것으로 기록했다는 시각도 존재하고, 저는 두 관점을 모두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Q. 영화 바람 결말이 어떻게 되나요?
A. 아버지가 간경화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 결말의 핵심입니다. 짱구는 장례식장에서 오열하고, 이후 몬스터의 2학년이 되어 조금씩 어른의 모습을 갖춰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청춘의 끝에서 아버지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구조입니다.
결론
영화 《바람》을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찾은 건 학창 시절의 낭만이 아니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겉멋을 부리던 그 시절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억지스러운 교훈도 없고, 인위적인 연출도 없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센 척을 하고 싶었을까"라는 질문을 영화가 직접 던지지 않으면서도, 보는 내내 그 답을 스스로 찾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한국 청춘 성장영화의 독보적인 클래식이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부모님 생각이 날 준비를 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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