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지키려던 남자가 정작 아내에게 배신당했다면, 그 남자는 과연 무엇을 위해 싸운 걸까요. 2009년 개봉한 윤재구 감독의 《시크릿》을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단순한 스릴러의 긴장감이 아니었습니다. 비밀을 덮으려다 더 깊은 함정으로 빠져드는 한 형사의 처절한 몸부림을 지켜보며, 어느 순간 가슴 한편이 서늘하게 내려앉는 기분을 받았습니다. 플롯 트위스트가 설계한 덫, 형사의 딜레마《시크릿》의 핵심 구조는 형사가 살인 현장에서 자기 아내의 증거를 은폐해야 한다는 딜레마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딜레마(dilemma)'란 두 선택지 모두 파국으로 이어지는 상황, 즉 덮어도 지고 드러내도 지는 구조를 말합니다. 이 설정 하나가 영화 전체를 떠받치는 힘입니다.주인공 김성열 형사는 살인 사건 현장에서 아..
솔직히 저는 《데스 위시》를 그냥 B급 복수극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나오는 액션 영화라면 익숙한 공식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줄거리를 꼼꼼히 따라가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단순한 총질 오락물이 아니라 꽤 복잡한 감정의 층위를 건드리는 작품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외과의사가 밤마다 거리의 범죄자를 처단하는 '사신(Grim Reaper)'으로 변해가는 이 이야기, 과연 영웅 서사인지 아니면 불편한 판타지인지 — 저도 내내 갈팡질팡했습니다. 자경단 액션의 카타르시스 — 왜 우리는 폴에게 이입하는가영화의 도입부는 꽤 잔인할 정도로 단순합니다. 시카고의 유능한 외과의사 폴 커시는 딸의 대학 합격과 자신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려 했지만, 긴급 호출에 병원으로 달려간 사이 ..
일제강점기 사이비 종교가 이름만 바꿔 현대까지 살아남았다면 어떨까요. 영화 《삼악도》는 실제 역사의 어두운 틈새를 파고드는 오컬트 호러입니다. 리뷰 영상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는데, 특히 돼지 피와 뱀 이빨 자국 장면에서는 잠깐 영상을 멈춰야 했습니다. 장르 팬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작품입니다. 오컬트 세계관 — 역사가 공포가 되는 순간346명. 이 숫자가 영화의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순간, 저는 그냥 허구적 숫자로 흘려듣지 못했습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실제로 신도 수백 명을 학살한 사이비 종교 사건이 실존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1920년대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백백교(白白敎) 사건이 있습니다. 당시 교주 전정운이 신도 수십 명을 살해한 것이 드러나 사회에 큰 충격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