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외치는 자가 결국 가장 잔인한 독재자가 된다면, 그 칼날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요. 2010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질문이 500년 전 조선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서늘해졌습니다. 임진왜란의 전화(戰火) 속에서 서자(庶子)들의 결핍과 분노를 정면으로 파고든 이 영화, 지금도 뒷맛이 쉽게 가시질 않습니다.서자라서 제사상에 술도 못 올리는 세상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멈칫했던 장면은 화려한 검술 씬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제삿날, 적자들 사이에서 제사상에 술 한 잔 올리려다 두들겨 맞는 견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구들 견(犬) 자, 기둥 주(柱) 자, 견주라는 멀쩡한 이름 놔두고 견들 자의 견자래요"라며 콧방귀를 뀌는 그 대사가 귓속을 파고들..
아내를 지키려던 남자가 정작 아내에게 배신당했다면, 그 남자는 과연 무엇을 위해 싸운 걸까요. 2009년 개봉한 윤재구 감독의 《시크릿》을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단순한 스릴러의 긴장감이 아니었습니다. 비밀을 덮으려다 더 깊은 함정으로 빠져드는 한 형사의 처절한 몸부림을 지켜보며, 어느 순간 가슴 한편이 서늘하게 내려앉는 기분을 받았습니다. 플롯 트위스트가 설계한 덫, 형사의 딜레마《시크릿》의 핵심 구조는 형사가 살인 현장에서 자기 아내의 증거를 은폐해야 한다는 딜레마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딜레마(dilemma)'란 두 선택지 모두 파국으로 이어지는 상황, 즉 덮어도 지고 드러내도 지는 구조를 말합니다. 이 설정 하나가 영화 전체를 떠받치는 힘입니다.주인공 김성열 형사는 살인 사건 현장에서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