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펑펑 울고 나온 날이 있었습니다. 예고편만 보고 가벼운 코미디겠거니 했던 2010년작 《헬로우 고스트》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20분, 김밥 속 미나리 한 줄기가 화면에 잡히는 순간, 제가 직접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고 그 직후부터 끝까지 걷잡을 수 없이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이 귀신을 보게 된다"는 단순한 설정 속에, 한국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반전 플롯이 숨어 있었습니다.반전 엔딩 — 복선이 한꺼번에 터지는 순간영화의 주인공 상만은 가족도, 연인도, 기댈 사람 하나 없이 살아온 중년 남성입니다. 삶의 의지를 완전히 잃은 그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대신 귀신 넷을 몸에 달고 살게 됩니다. 변태 할아버지, 울보 아줌마, 골초 아저씨, 초등학생 귀신. 얼핏 보..
명절 연휴에 온 가족이 모인 거실에서 틀 만한 영화를 찾다가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못하고 넷플릭스 화면만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그날 우연히 다시 꺼내 든 것이 2014년작 《수상한 그녀》였는데, 처음 봤을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이 울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보이는 게 달라진 것인지, 할머니 말순이라는 인물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읽혔습니다.회춘 판타지 뒤에 숨겨진 진짜 서사《수상한 그녀》는 70대 노인 오말순이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한 장으로 20대의 몸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회춘 판타지(rejuvenation fantasy)란 노화나 상실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두려움을 뒤집어 희망으로 치환하는 서사 장치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이라는 질문을 스크린 위에서 실험해 보..
가장 믿었던 사람이 나를 나락으로 밀어 넣는다면, 그 순간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요.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를 보면서 제가 처음 든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배신, 포커 확률, 그리고 바닥에서부터 시작되는 역전극.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타짜 시리즈 특유의 찰진 맛이 현대적인 포커판 위에서 이렇게 잘 살아날 줄은 몰랐거든요.배신의 구조: 열등감이 만들어낸 범죄장태영(변요한)이라는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운이 좋았습니다. 지각을 해도 선생님이 출석을 안 부르고, 마른하늘에 비를 맞아도 자기만 빠져나가는 식이었죠. 창업 후에는 손대는 사업마다 터졌고, 8년 만에 매출 1천억을 돌파했습니다.문제는 그 옆에 박태영(노상현)이 있었다는 겁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서늘하게 와닿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