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불이 꺼지고 화면이 밝아오던 순간, 저는 이게 단순한 영화 관람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2008년 아이언맨을 처음 봤던 그 스무 살의 기억부터 지금까지, 11년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경험이었습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22번째 작품이자 인피니티 사가의 대단원으로,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우며 대중문화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시대의 절정 — 11년이 한 편에 담기는 감각영화관을 나오면서 제가 처음 내뱉은 말은 "아, 진짜 끝났구나"였습니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이 세 캐릭터는 각각 3편의 솔로 영화를 이끌며 MCU라는 거대한 서사 구조의 기둥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 무게를 체감한 건 극장 안에서가 아니라, 밖으로 나와 찬 바람을 맞..
솔직히 저는 《2012》를 처음 봤을 때 "그냥 CG 때려박은 오락 영화"라고 얕잡아 봤습니다. 그런데 다시 꺼내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전 지구적 지각 붕괴와 메가쓰나미라는 물리적 파국 앞에서, 이 영화가 실제로 묻고 있는 질문은 단 하나였습니다. "당신은 마지막 순간에 누구를 위해 뛰겠는가." 스펙터클 — 파괴의 미학이 얼마나 정교한가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이 영화에 쏟아부은 VFX(시각 특수 효과) 예산은 당시 기준으로 약 2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VFX란 컴퓨터 그래픽과 실사 촬영을 합성해 현실에서 불가능한 장면을 구현하는 기술인데, 《2012》는 이 기술을 단순한 폭발 장면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 자체가 무너지는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점에서 결이 다릅니다.제가 가장 압..
괴물 영화에서 진짜 무서운 건 괴물이 아니라 대낮이라는 걸,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크리처 액션 블록버스터 《호프》의 클립을 처음 마주한 순간, 영상이 시작된 지 채 1분도 안 돼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습니다. 《추격자》, 《황해》, 《곡성》으로 이미 검증된 감독이 10년간 갈아 넣은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클립 하나로도 고스란히 전달됐습니다. 크리처 액션의 문법을 다시 쓴 연출 선택제가 직접 클립을 보면서 가장 먼저 충격받은 건 배경이었습니다. 괴수가 등장하는 장면이 대낮입니다. 이건 생각보다 훨씬 대담한 선택입니다.일반적으로 크리처물(creature film), 즉 괴수나 미지의 생명체를 중심으로 한 장르 영화는 CG의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