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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영화 리뷰

블리츠 (네오누아르, 제이슨 스타뎀과 에이단 길렌, 하드보일드 서사)

ablewonnie 2026. 9. 16. 18:00

목차


    경찰이 살인마를 잡아놓고도 증거 부족으로 풀어줄 수밖에 없는 장면, 보고 계십니까? 2011년 개봉한 엘리엇 레스터 감독의 《블리츠(Blitz)》가 딱 그 순간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한동안 말이 안 나왔습니다. 법이 보호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쪽을 지켜주는 광경이 너무도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네오누아르 장르가 런던 잿빛 거리와 만났을 때

    《블리츠》는 아일랜드 작가 켄 브루언의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여기서 하드보일드(Hard-boiled)란, 감상적인 영웅주의 대신 냉혹한 현실과 도덕적 회색지대를 날것 그대로 묘사하는 범죄 소설·영화의 장르적 문법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선이 악을 깔끔하게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선과 악의 경계 자체가 흐릿한 세계를 그리는 방식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런던 뒷골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입니다. 화려한 런던이 아니라, 습기 찬 골목과 형광등이 깜빡이는 주차장, 인적 없는 복도가 배경입니다. 제가 직접 영상을 처음 틀었을 때 첫인상이 "이건 미국 액션이 아니구나"였습니다. 색감부터가 달랐습니다. 채도를 낮춘 잿빛 톤이 시종일관 유지되면서, 이 도시에는 희망보다 피로가 더 많다는 느낌을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이 작품은 네오누아르(Neo-Noir) 장르로도 분류됩니다. 네오누아르란 1940~50년대 고전 필름 누아르의 어둡고 숙명론적인 분위기를 현대적 배경과 감각으로 재해석한 장르를 의미합니다. 고전 누아르가 미국 도시의 부패와 운명을 다뤘다면, 네오누아르는 그 문법을 현대 사회의 제도적 모순과 연결시킵니다. 《블리츠》는 바로 그 연결고리를 런던이라는 도시 위에 정교하게 얹습니다.

    요약: 《블리츠》는 하드보일드·네오누아르 장르의 문법을 런던 특유의 잿빛 현실감과 결합해, 첫 장면부터 미국식 액션과는 다른 결의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제이슨 스타뎀과 에이단 길렌, 이 두 사람의 충돌이 전부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이슨 스타뎀이라는 이름을 보면 반사적으로 카체이스와 폭발 장면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블리츠》의 브랜트 형사는 그보다 훨씬 더 음침하고 복잡한 인물입니다. 과잉 진압으로 징계 위기에 처하고, 언론에 두들겨 맞고, 정보원마저 잃는 인물입니다. 스타뎀 특유의 마초적 카리스마는 그대로이지만, 이번엔 그게 분노와 무력감 위에 얹혀 있습니다. 그 묘한 조합이 캐릭터를 훨씬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반대편에 서 있는 살인마 블리츠를 연기한 에이단 길렌은 저에게 이 영화의 진짜 수확이었습니다. 그는 사이코패스(Psychopath)적 인물을 연기합니다. 사이코패스란 공감 능력의 결핍과 반사회적 행동 양식을 핵심 특징으로 하는 성격장애를 가리키며, 임상적으로는 반사회성 성격장애(ASPD)의 스펙트럼 안에서 논의됩니다(출처: WHO 국제질병분류 ICD). 길렌이 연기하는 블리츠는 폭력 앞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경찰서에서 뻔뻔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습니다.

    두 배우의 심문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팽팽한 순간입니다. 브랜트가 블리츠를 "긁어보려" 하지만, 오히려 블리츠가 브랜트의 과거를 들춰내며 역도발을 시도합니다. 제 경우엔 이 장면이 단순한 캐릭터 대결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서 정직하게 싸우는 자와 시스템의 빈틈만 노리는 자의 구조적 충돌처럼 읽혔습니다.

    • 브랜트: 과잉 진압이라는 딱지를 달고도 현장을 포기하지 않는 거친 형사
    • 블리츠: 자신을 체포했던 경찰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계획적 사이코패스
    • 두 인물의 공통점: 둘 다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
    요약: 스타뎀의 분노와 무력감, 길렌의 냉혹한 사이코패스 연기가 맞부딪히는 심문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 장력입니다.

     

    하드보일드 서사가 건드리는 질문 —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영화가 저에게 가장 오래 남긴 감정은 카타르시스보다 먼저 찾아온 그 서늘한 무력감이었습니다. 동료 형사 로버트가 살해당하고, 정보원이 희생되고, 무고한 소년마저 블리츠의 손에 죽어가는데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감시뿐이라는 현실이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살인마가 경찰서 문을 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장면은, 제가 사회생활에서 직접 목격한 부조리한 광경과 겹쳐지면서 더욱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공정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법학과 범죄심리학에서 폭넓게 다뤄지는 개념으로, 시민이 법 집행 기관에 협력하는 의지를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연구되어 왔습니다(출처: 미국 국립사법연구소(NIJ)). 《블리츠》는 바로 이 절차적 정의가 작동을 멈췄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줍니다.

    문제는, 브랜트의 방식도 결국 법의 바깥에 있다는 점입니다. 과잉 진압, 사적 제재, 정보원을 통한 비공식 수사. 이것이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사실이지만, 공권력이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폭력을 지나치게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윤리적 딜레마 역시 저는 외면하기 어려웠습니다. 브랜트가 영웅처럼 보이는 이유가, 상대가 너무도 명백한 악당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현실에서는 그 경계가 이렇게 선명하지 않습니다.

    요약: 《블리츠》는 절차적 정의가 무너진 자리에서 사적 제재가 왜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매력 자체가 윤리적으로 위험하다는 것도 놓치지 않습니다.

     

    수작인가, 아쉬운 각색인가 — 제 최종 평가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단순한 스타뎀 액션 영화로 분류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기엔 아까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장르 영화로서의 쾌감이 있고, 결말부의 단죄 장면은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교훈주의를 비웃는 차갑고 통렬한 마무리입니다. 낡은 영웅주의 대신 흙먼지와 피비린내로 얼룩진 밑바닥 현실의 질감을 탁월하게 포착해 냈습니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켄 브루언의 원작 소설이 지닌 런던 뒷골목의 복합적인 사회적 병폐, 그리고 브랜트라는 인물의 내면에 축적된 자기파괴적 에너지가 영화에서는 많이 걷어내져 있습니다. 원작을 먼저 읽은 분들이라면 "화끈한 액션 복수극"이라는 외피에 맞춰 원작이 다소 평면적으로 단순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제가 장르 영화에서 찾는 가장 중요한 덕목 하나를 갖추고 있습니다. 보고 나서 뭔가가 남는다는 것입니다. 액션의 쾌감이 아니라, "법이 말하는 정의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한동안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걸로 충분히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원작 소설의 깊이에 비해 영화화 과정에서 단순화된 아쉬움이 있지만, 하드보일드 장르 본연의 거친 매력과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는 점에서 수작으로 평가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블리츠 영화, 원작 소설이랑 많이 다른가요?

    A. 핵심 플롯 구조는 유사하지만, 원작 켄 브루언의 소설이 지닌 브랜트 형사의 자기파괴적 내면과 런던 사회의 음울한 병폐 묘사가 영화에서는 상당 부분 걷어내져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영화는 원작의 깊이보다는 장르적 쾌감 쪽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원작을 먼저 읽으셨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습니다.

     

    Q. 제이슨 스타뎀 다른 영화랑 비교하면 액션이 많은 편인가요?

    A. 《트랜스포터》나 《메캐닉》 시리즈에 비하면 액션 빈도는 적은 편입니다. 대신 장면마다 육탄전의 무게감이 훨씬 묵직하게 전달됩니다. 화려한 스턴트보다는 거칠고 짧게 끝나는 싸움들이라, 스타뎀 영화치고 의외로 스릴러에 가깝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Q. 블리츠가 왜 경찰들만 골라 죽이나요?

    A. 영화 중반부에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블리츠는 과거에 브랜트를 비롯한 경찰들에게 체포·제압당한 경험이 있고, 그 모욕감이 복수의 동기로 작용합니다. 자신을 체포한 이력이 있는 경찰들을 하나씩 찾아 제거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계획적인 범행입니다. 이 설정이 영화에 서스펜스 장력을 부여하는 핵심입니다.

     

    Q. 네오누아르 장르 영화를 처음 보는데 블리츠부터 봐도 괜찮을까요?

    A. 충분히 괜찮습니다. 《블리츠》는 장르적 문법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이야기 자체가 직관적으로 전개됩니다. 다만 보고 나서 《차이나타운》(1974)이나 《세븐》(1995) 같은 고전 네오누아르도 찾아보시면, 이 장르가 왜 꾸준히 만들어지는지 맥락을 훨씬 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결론

    《블리츠》는 제이슨 스타뎀의 이름 때문에 가볍게 켰다가, 끄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법의 테두리가 선량한 사람에게는 족쇄가 되고 악의적인 자에게는 방패가 될 때 느끼는 그 서늘한 분노를, 이 영화는 거칠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건드립니다. 브랜트의 사적 제재가 윤리적으로 온전히 정당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단죄의 순간이 왜 그렇게 짜릿하게 느껴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 몫을 다합니다.

    하드보일드 장르나 네오누아르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그리고 시스템의 한계에 부딪힌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풀 버전으로 꼭 보시길 권합니다. 가능하다면 켄 브루언의 원작 소설도 함께 읽어보시면, 영화가 담아내지 못한 더 깊은 층위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PaYbElsd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