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만 원 때문에 시작된 갑질 하나가 서울 전역에 죽음을 퍼트리는 저주의 도화선이 됩니다. 영화 《구마수녀: 들러붙었구나》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단순한 오컬트 공포물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등골이 서늘해진 이유가 귀신 때문이 아니라, 일상에서 너무나 익숙하게 목격해온 장면들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갑질이 불러온 저주, 그 출발점은 어디인가영화는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 입주민이 택배 기사에게 만 원을 두고 '돈이 없었다'며 생트집을 잡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말이 안 통하자 맘카페에 글을 올려 밥줄을 끊겠다고 협박하고, 결국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까지 들고나가라며 모욕을 줍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볼 때 드라마나 뉴스에서 숱하게 봐온 광경과 너무 겹쳐서, 손이 절로 쥐어지더군요.그런데..
2006년 신한솔 감독의 《싸움의 기술》은 개봉 당시 단순한 학원 액션 활극으로 소비됐지만, 직접 보고 나서 저는 전혀 다른 결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주먹 한 방을 배우기 위해 세상의 냉대를 온몸으로 견뎌낸 한 소년의 성장통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백윤식이 구현한 오판수라는 캐릭터는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병태 성장 — 아무것도 없는 소년이 버티는 법영화를 처음 틀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첫 장면부터 주인공 병태는 돈을 뜯기고 무릎을 꿇습니다.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고 속으로만 자책하면서요. 그 위축된 어깨가 화면을 가득 채울 때, 저는 그게 단순한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는 아들의 멍든 몸보다 성적표에 더 ..
2004년 개봉한 영화 《우리 형》은 선천성 구순구개열을 지닌 형과 주먹 하나로 버텨온 동생이 한 어머니 아래에서 서로를 향해 질투하고 원망하면서도 끝내 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봤을 때 저는 솔직히 '또 신파 아닌가'라는 선입견을 먼저 품었는데, 두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생각을 완전히 접어야 했습니다. 형제 애증 — 결핍이 낳은 상처와 그 무게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먼저 가슴 한구석을 후벼 팠던 것은 형제간의 애증(愛憎) 구조였습니다. 여기서 애증이란 단순히 미워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 자체가 상대방의 결핍을 증명하는 관계를 가리킵니다. 형 성현(신하균)은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구순구개열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선천성 구순구개열이란 태..
복수를 꿈꾸다가 문득, 내가 쫓던 괴물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2023년 개봉 후 넷플릭스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김재훈 감독의 《악마들》을 보면서 제가 느낀 감각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강력계 형사와 연쇄 살인마의 몸이 뒤바뀐다는 설정 하나로, 이 영화는 복수와 정의, 그리고 인간의 파멸을 동시에 파고듭니다. 바디체인지 설정이 건드린 것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바디체인지(Body Change), 즉 두 인물의 육체와 영혼이 맞바뀌는 장치는 한국 영화에서 주로 코미디 포맷에 소비되어 온 소재였으니까요. 쉽게 말해 이 설정은 대부분 웃음을 유도하기 위한 도구였는데, 《악마들》은 그 익숙한 문법을 완전히 뒤집습니다.강력 형사 최재완은 전과 18범 연쇄 살인마 차진혁을..
아이가 살인 용의자로 몰렸을 때, 부모는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영화 《비광》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들이밉니다. 《미쓰백》으로 평단과 관객을 동시에 사로잡았던 이지원 감독의 신작으로, 오는 9월 2일 개봉 예정입니다.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중간도 아닌 딱 첫 장면에서 숨이 막혔습니다. 그 감각이 가시기도 전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부성애는 왜 가장 무서운 감정일까요영화 속 황중구는 한때 KBO 4번 타자였습니다. 4번 타자란 팀에서 가장 강한 타격 능력을 가진 주전 선수에게 붙이는 포지션으로, 쉽게 말해 그 팀의 얼굴이자 중심축 같은 자리입니다. 그런 사람이 3류 건달로 추락해 경찰서를 제 집 드나들듯 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비극 서사입니다.그런데 제가 ..
제79회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 이 한 줄만으로도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가 범상치 않다는 건 직감했습니다. 《부산행》, 《반도》에 이은 세 번째 좀비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했는데, 리뷰 영상을 보는 내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좀비물과는 차원이 달랐거든요. 집단 지성 — 뇌 없는 생명체가 최단 경로를 찾는다면?《군체》가 설정의 기반으로 삼은 생물이 있습니다. 바로 황색망사점균(Physarum polycephalum)입니다. 여기서 황색망사점균이란 뇌도, 신경계도, 중앙 지휘 개체도 없이 오직 영양분의 흐름만으로 스스로 경로를 최적화하는 단세포 생물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는데 집단 전체가 가장 효율적인 길을 알아서 찾아낸다는 이야기죠.실..